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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04 09: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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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이름 '독도의용수비대' 막 내리다
잊혀진 이름 '독도의용수비대' 막 내리다
울릉군 "추모공원 용지제공 못해"...동지회, 현판 철거로 대응
김점구 기자  
▲ 독도의용수비대 동지회 정원도 회장
ⓒ2003 독도수호대
지난 27일 울릉도에 있는 독도의용수비대 동지회(이하 동지회) 사무실의 현판이 당국의 비협조로 끝내 철거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동지회의 현판이 내려진 것은 마치 독도문제에 대한 우리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정원도(75, 제2지대 대장) 회장은 정부의 안일한 독도정책과 울릉도에서조차 무의미한 동지회 사무실은 존속할 필요가 없다며 현판을 내린 심정을 토로했다.

동지회는 그동안 보훈회관의 일부를 빌려 쓰며 사용료를 납부하여 왔으나 그마저 중지된 상태이며, 직원은 월급을 지급할 수 없어 그만 두게 하고 칠순의 노병들이 직접 운영해 왔다.

독도의용수비대와 독도

독도의용수비대는 일본의 무력침략으로부터 독도를 지키기 위해 1953년 4월 20일 울릉도 거주 청년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홍순칠 대장을 비롯한 대원 일부는 한국전쟁중에 부상당한 상이군인 출신이며, 수송대 대장 정이관은 당시 67세의 노인이었다. 특히 후방지원대 박영희 대원은 홍순칠 대장의 부인으로, 유일한 여성대원이었다.

소총과 조준경도 없는 박격포가 유일한 무기였던 독도의용수비대에 비해 일본은 항공기와 함정으로 무장한 강력한 화력을 갖추고 있었다. 다행히 막사를 짓고 남은 통나무를 이용해 가짜 대포를 만드는 지혜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하긴 했지만 이들의 활동은 목숨을 건 위험의 연속이었다.

혹독한 추위와 물리면 죽을 수도 있는 동양집모기는 그들을 수시로 괴롭혔고, 병력교체를 위한 지원대 소속 삼사호는 파도에 휩쓸려 망망대해에서 3일동안 표류 끝에 독도에 도착하기도 했다.

1956년 12월 경찰에 업무를 인계하기까지 이들의 활동은 목숨을 건 투쟁이었으며, 허학도 대원이 독도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업무를 인계받은 국립경찰은 현재 독도경비대로 재편되어 경계업무를 하고 있으며, 정부에서 직접 관할하기 전까지 독도경비대는 독도를 지키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34인의 독도의용수비대의 활동이 없었다면 지금 독도는 ‘일본 땅 다케시마’가 되었을 것이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며,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로 존재하게한 산 증인이며, 독도의용수비대가 동도에 직접 새긴 “韓國”글씨가 지금도 선명히 남아 있다.

"독도의용수비대 추모공원 용지를 제공할 수 없다"

독도의용수비대추모공원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윤한도 의원, 이하 추진위원회)는 독도의용수비대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울릉도 약수공원에 추모공원을 조성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2001년 12월 3일 울릉도와 동지회에 협조공문을 보냈고, 동지회는 공원조성을 찬성하는 의견을 밝혔다.

이에 울릉군은 2001년 12월 31일자 공문을 통해 추모공원 설치는 장례법 등 관계법령과 주민과의 마찰 때문에 불가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러나 추진위원회는 공문 발송 후 납골묘는 설치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문화관광과 담당자에게 검토대상에서 제외해 달라는 후속 의견을 전달했으며, 울릉군은 납골묘 설치를 주요골자로 하는 답변서를 3개항에 걸쳐 다음과 같이 보내왔다.

가. 울릉도 관광지구 조성계획 및 관광지 개발목적에 맞지 않고, '관광진흥법' 규정에 따라 시설대상물이 아니다.
나. '장사등에 관한 법률' 규정에 따라 납골묘 설치장소로 적합하지 않다.
다. 관내주민, 독도 관련단체에서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은 국립묘지에 안장되어야 한다고 하며, 납골묘 설치로 주민과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그리고 건립추진은 울릉군 지역단체에서 주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답변을 종합하면 독도의용수비대 추모공원 건립 의지가 없다는 분석이며, 반대 이유도 설득력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추진위원회는 납골묘 설치는 검토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답변서의 주요 골자는 납골묘와 관련한 ‘장사등에 관한 법률’, ‘관광지구 조성계획‘, ‘주민마찰’이었다.

▲ 독도의용수비대 추모공원 조감도
ⓒ2003 독도수호대
납골묘 설치로 지역주민과 마찰?

납골묘를 설치한다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음은 물론, 오히려 교육의 현장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전국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광주 5.18국립묘지는 공원화하여 찾는 이에게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경기도 마석의 모란공원은 미술관 등을 설치해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약수공원에는 독도박물관과 안용복 장군 충혼비, 독도전망대가 있어 독도의용수비대의 뜻을 기리고 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할 추모공원의 적지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오는 6월 12일은 울릉군의 허가로 故 사운 이종학(전 독도박물관장) 선생의 유골이 안치되는 추모비를 세우는 날이다. 이를 보더라도 추모공원은 법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울릉군의 의지가 문제임을 알수 있다.

납골묘 설치로 인한 지역 주민과의 마찰은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동지회의 찬성이 있었고, 기자가 만나본 울릉도민도 울릉도를 알리기 위해서라도 군이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만약 울릉군이 객관적인 조사 없이 ‘주민 마찰’을 운운 했을 경우, 책임자는 울릉군민과 국민에게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독도의용수비대 대원의 국립묘지 안장은 군민의 입장이 아닌 동지회의 의견을 존중했어야 했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다수는 국립묘지 안장을 원치 않고 있으며, 동지회에서는 울릉도에 납골묘 장소를 알아보기도 했다. 울릉군은 당사자인 동지회의 의견은 묻지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울릉군 지역단체에서 주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 추모공원에 설치할 조형물(안)
ⓒ2003 민당
답변의 마지막은 울릉도 지역단체에서 주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울릉군에서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지난 2002년 8월 독도탐방행사를 위해 울릉도에 갔을 때 생존자 12명 가운데 울릉도에 거주하는 다섯 분을 직접 만나 당시 활동상황을 듣고 추모공원 진행 현황을 설명했다.

이어서 현실적인 문제를 얘기하던중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잇지 못하는 노병을 보는 우리 참가자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독도의용수비대의 활동을 ‘할 일 없어서 미역 따 먹으러 갔다’라고 말하는 울릉도였다.

도동항에서 울릉도의 젊은이들을 만나 독도의용수비대에 물었으나 누가 생존해 있는지, 어느 누가 대원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울릉도의 현실에서, 지역단체에서 주도적으로 추진하여야 한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리고 지역단체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답변 후 1년 5개월이 지난 오늘, 추모공원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없었다.

지난 4월 12일 돌아가신 김병렬 전 회장의 장례식에서 보여준 모습은 또 무엇인가? 유족과 군청 관계자에 따르면 울릉군 군수는 물론 아무도 장례식에 참가하지 않았고, 국립현충원에 안장되는 5월 2일도 마찬가지였다.

울릉군이 독도의용수비대를 인식하고 있는 수준이며, 동지회의 현판을 정원도 회장이 직접 떼어낼 수밖에 없는 것이 울릉도의 현실이다.

그리고 어제(29일) 울릉군 기획예산과에서 정원도 회장님을 만나기로 하였으나 30분이나 늦게 도착했고, 늦는다는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기본도 지키지 않은 울릉군의 상투적인 변명은 여지없이 드러난 것이다.

포천군을 타산지석으로

독도박물관과 울릉군은 현판 철거를 뜨거운 채찍으로 삼아 독도의용수비대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독도박물관장과 군수는 독도의용수비대의 현실을 파악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울릉도에서 할 일은 무엇인지 고민하여야 한다.

더 이상 노병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96년 일본의 독도망언에 항의하며 음독자살한 고 엄주성 선생은 포천 국가유공자 묘역에 잠들어 있다.

포천군의회는 엄주성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독립유공자와 함께 군내 공원에 추모공간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1996년 독도에 설치하기 위해 만든 엄주성 선생의 청동 부조는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독도수호대 사무실에 있다. 울릉도는 포천군의회의 결정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독도의용수비대의 고향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성 명 서]
독도의용수비대 동지회 현판 철거를 애통해 하며...

‘독도의용수비대 동지회’의 현판이 철거된 지금, 침통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독도의용수비대는 한국전쟁 당시 일본의 무력 침략에서 독도를 지키기 위해 민간인으로 구성되었다.

홍순칠, 황영문, 서기종, 김재두, 최부업, 조상달, 하자진, 김용근, 김현수, 이형우, 김장호, 양봉준, 정원도, 김영복, 김수봉, 이상국, 이규현, 김경호, 허신도, 김영호, 김병렬, 정재덕, 한상용, 박영희, 유원식, 오일환, 고성달, 김인갑, 구용복, 정이관, 안학률, 정현권, 이필영, 허학도.

잊을 수 없는 이름들이다.

20대 청년에서 60대 노인, 그리고 여성대원으로 구성되었고, 특히 홍순칠 대장을 비롯한 다수는 한국전쟁에서 부상당한 상이군인이었다.

일본은 한국전쟁의 혼란한 틈을 타 비행기와 함정으로 독도를 점거하기 위해 침략을 했고, 독도의용수비대는 자비를 들여 구입한 소총 몇 자루와 박격포로 무장, 아니 독도를 수호하겠다는 숭고한 애국정신 정신 하나로 모든 것을 막아냈다.

3년여의 활동을 마치고, 1956년 12월 국립경찰에 업무를 인계하고 지금은 독도경비대가 독도경계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독도의용수비대의 활동이 있었기 때문에 독도를 대한민국 경찰이 지키게 되었으며, ‘독도의용수비가 없었다면 지금 독도는 일본영토인 다케시마가 되었다’라는 주장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우리에게 독도의용수비대는 없다. ‘독도의용수비대 동지회’의 현판이 떨어진 2003년 5월 27일, 독도는 죽었다.

‘독도의용수비대 동지회’ 현판은 대한민국이 스스로 떼어낸 것임을 우리는 통감해야 한다. 그리고 노구의 몸으로 직접 현판을 떼어내는 ‘독도의용수비대 동지회’ 정원도 회장의 심정을 생각한다면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우리는 피눈물을 흘려야 할 것이다.

독도의용수비대의 업무를 인계받은 국립경찰은 관계서류를 불태워 자료조차 남아 있지 않고, 대한민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한일 외교상 분쟁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독도문제는 가능한 거론하지 않는 결론하에 독도정책을 펴고 있다. 그리고 독도박물관과 관리기관인 울릉군은 독도의용수비대의 현황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며, 대원의 죽음에도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4월 12일 김병렬 전회장님의 운명에 아무도 함께 하지 않은 것은 독도의용수비대를 기억하지 못하는 울릉도의 현실이다. 울릉군은 “서울 촌것들이 무엇을 했나?”라고 말하기 전에 스스로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울릉군수와 독도박물관 관장, 그리고 울릉도 의회의장등 관계자는 지금이라도 머리 숙여 사죄하고 떨어진 현판을 직접 달아야 한다. 이는 ‘울릉도의 독도’를 자처하는 울릉도가 해야 할 최소한의 사죄이며 예의일것이다.

하루 빨리 독도의용수비대 동지회의 현판이 다시 걸리기를 기대하며, 독도의용수비대 동지회 여러분께 통절한 심정으로 사죄 드립니다.

2003년 5월 28일

독도수호대
* 김점구 기자는 독도수호대 사무국장입니다.

2003/05/30 오후 12:09
ⓒ 2003 OhmyNews

 (2003/12/13 14:3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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