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쇠의 사진 세계 헤더 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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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18 10: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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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서프] 방문기 “여기는 韓國領(한국령), 독도!”


방문기 “여기는 韓國領(한국령), 독도!”


“로밍 없이 휴대폰 터지는 이곳은 우리땅”


특정도서 제1호 독도...일본과의 마찰 우려 군인 대신 해경이 지켜



이기호 (actsky@dailyseop.com)기자


  


외교부가 일본과의 관계를 의식해 독도 방문뿐 아니라 관련기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던 시기였던 지난해 11월 데일리서프라이즈는 20일부터 23일까지 3박4일간의 일정으로 독도를 방문했다.

독도에서 머문 2시간 30분 동안 본보는 당시 독도수비대장을 비롯한 현지 경찰들과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일본과의 외교마찰을 우려한 당국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새해 첫날 추진한 독도수비대장과의 인터뷰도 마찬가지.

독도수비대장은 “일본의 예민한 반응을 고려한 외교부의 반대로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고 밝혔고, 경북경찰청에 의하면 외교부는 이미 본지의 기사에 대해 일본대사관 측의 항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천연기념물 제336호 독도에 대한 여행제한이 지난 16일부터 자유로워졌다.

정부의 입도(入島)제한조치로 외국보다 가기 어려웠던 우리 땅 독도로의 길이 활짝 열린 것. 이에 본보는 일본과의 외교마찰을 고려해 ‘묵혀놨던’ 당시 기행문을 공개한다.

다음은 독도 기행문.

독도

밝히어라 밝히어라/ 해님아/ 밝히어라.
괭이갈매기 노래 소리/ 힘찬 파도 소리/ 벗삼는/ 우리 땅 독도를
동해의 해님아/ 어서 어서/ 밝히어라.
빛샘이 넘쳐/ 밝아 오는 새벽/ 첫 햇살을 품어/ 찬란한 금빛 수놓아/ 금수강산 이룩하여
척박한 땅에/ 늘 푸른/ 우리 나무 소나무가/ 뿌리를 내려/ 하늘로 오르는
우리 땅/ 독도/ 막내둥이 독도.
신라 때는/ 우산도
세종실록 지리지에/ 동국여지승람에/ 삼봉도/ 우산도.
예로부터/ 독도는/ 우리 땅
민족의 영산 백두산 뿌리/ 뻗고 또 뻗어내려/ 동해에서 불끈 솟아오른/ 우리 땅 독도.
우리 어부/ 지친 몸/ 잠시 쉬어 가게 하는/ 우리 땅/ 막내둥이 독도.
독도는 우리 땅/ 예로부터/ 우리 땅

1987년 공전의 동요히트곡인 ‘예솔아(이규대 곡)’로 유명한 김원석 님의 동시 ‘독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솟아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는 곳. 남달리 동해를 좋아하고 그 동해의 일출을 좋아하는 나에게 독도는 꼭 가보고 싶은 미지의 세계였다.

울렁울렁 울렁대던 울릉도행 여객선

토요일 오전 9시 50분. 갑자기 전화가 왔다. 독도를 가자는 것이다. 독도에 취재가 있다는 건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다소 급작스런 일정이었다. 데스크는 “취재비는 나중에 따로 줄 테니 일단 다녀오라”고 한다.

오후 5시에 서울을 떠나 새벽 1시에 포항에 도착했다. 8시간이 걸린 여행에 피곤함이 몰려왔다. 바닷가 근처 숙소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가 오전 10시에 울릉도행 여객선을 탔다. 3시간 정도면 도착한가고 했지만 정작 4시간 10분이 소요됐다.

울릉도는 정말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을 안고 가야하는 곳인가 보다. 기둥을 붙들고 엎어져있는 사람,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웬만해선 멀미를 하지 않는 나도 힘들었다. 차라리 자는 게 낫겠다 싶어 억지로 눈을 붙였다.

헬기를 타고 독도를 간다기에 흔쾌히 동의했었다. 만일 처음부터 울릉도에서 10시간이 걸리는 바지선(Barge)을 탄다고 했으면 아마 심각히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애초 “쉬는 셈치고 다녀오라”던 데스크는 처음부터 헬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독도까지는 화물선을 타고

울릉도 저동항에 도착하니 오후 2시 10분. 울릉도에 머물고 있는 친한 선배에게 전화를 했더니 마침 금강산에 가있단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하는 수밖에. 일정이 또 바뀐다. 울릉도에서 1박 뒤 다음날 새벽에 떠나려던 계획이 오늘 오후 5시에 바지선에 올라 자정까지 버틴 뒤, 출발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사우나라도 가볼까 했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나의 가장 큰 문제의식은 ‘헬기를 타고 독도를 간다’는 기존 일정이 뒤바뀐 이유였다. 일행들에게 물었더니 얼마 전 경상북도경찰청의 고위간부가 헬기를 타고 독도에 갔다가 언론에 뭇매를 맞았다는 것이다. 그 탓에 헬기 한 번 타보겠다던 나는 화물선을 타게 됐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던가. 인간 예측의 한계와 기대심리의 허상을 절감한다.

트럭을 타고 울릉도를 가로질러 저동항이 아닌 다른 곳에서 4시 30분경 바지선에 올랐다. 바지선이라고 해서 바지처럼 생긴 배려니 했는데 그냥 커다란 화물선이었다. 배의 앞부분에는 이미 커다란 포크레인을 비롯한 중장비와 모래를 비롯한 건설자재들이 쌓여 있었고 우리는 모래를 가로 질러 숙소가 있는 배의 뒤편으로 갔다.

식당이 우리에게 방으로 배정됐다. 주변에서는 다들 낚시를 하겠다고 했지만 풀만 먹는 나는 그냥 책이나 읽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운 좋게 조그마한 빈방 하나가 따로 제공됐다. 옷을 갈아입고 책을 보다가 금방 잠이 들었다. 역시 철학책을 가져오길 잘했다.

우리나라 오른쪽은 동해, 끝땅은 독도

일행 중에 한 명인 이종격투기선수출신의 덩치 좋은 후배가 조심스레 노크를 하더니 문을 연다. 배가 움직인단다. 왜 배를 육지에서 떼어놨는지를 알 수 있었다. 주변이 복잡한 관계로 너무 어두우면 배를 움직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일부는 여전히 낚시에 여념이 없었고, 일부는 TV를 보거나 간식을 먹고 있었다. 여객선도 아닌 화물선으로 바다 위에서 TV를 볼 수 있다는 게 생소했다. 가수 김흥국 씨가 어렵다는 퀴즈프로그램에서 일본출신의 아유미 양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이래저래 비범한 날이었다.

방으로 다시 올라가서 잠을 청하려는데 절친한 후배로부터 이성상담이 들어왔다. 우리나라 휴대폰은 울릉도에서 독도를 가는 바다 위에서도 문제가 없었다. 매사에 진지한 이 의사선생과 한참을 통화하고 나서야 전화를 끊었다. 여태 장가 못간 아들을 둔 부모님께서 아시면 한 소리 하실만한 상황이었다.

바다위에서 자장면을 배달시켜 먹던 휴대폰 CF가 있었다. 일본사람들은 굳이 일본해라고 부르지만 동해는 우리 휴대폰이 터지는 곳이었다. 아무리 우리의 동해를 ‘일본해’라 고집하고,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고 불러도 우리나라의 오른쪽 바다는 동해였고, 그 끝에 있는 섬은 독도였다.

드디어 독도가 보인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00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독도는 우리 땅).”

방안은 쌀쌀했지만 바깥은 오히려 바닷바람이 훈훈했다. 동그란 창밖으로 가로등마냥 바다 위를 비추는 배들의 불빛이 보이고 1시간 이상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울릉도의 야경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편의상 배의 이름을 안전제일호라고 하기로 했다. 배 앞에 한자로 안전제일이라고 써있기 때문이다. 안전제일호는 화물선답게 요란하고 시끄러웠지만 또 언제 이런 경험을 할까 싶어 슬슬 재미가 느껴졌다. 난류의 영향인지(?) 바깥은 여전히 따뜻했고 배는 계속 속도를 붙이고 있었다.

다시 깜빡 잠이 들었는데 어느새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종격투기 덩치가 다시 왔다. “일어나십시오. 독도가 보입니다.” 드디어 독도가 나타난 것이다.

특정도서 제1호 독도

오전 6시 45분. 바깥은 환하다. 카메라를 주섬주섬 챙겨 나갔다. 정말 독도가 보인다. 하늘이 맑은 게 날씨가 대단히 좋은 날이다. 오른쪽 섬(동도)에는 이미 경찰들이 나와서 우리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배가 강하게 요동치자 겨레의 심장박동이 느껴지는 듯하다. 바로 코앞인 것 같은데 정박하기까지 35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안전제일호에서 내려 독도에 첫 발을 내딛었다. 오전 7시 20분.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오른발과 왼발 중 어느 쪽을 먼저 내딛었을까하는 퀴즈가 있었다. 답은 두발을 동시에 내딛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나도 두발을 동시에 내딛었다.

선착장에서 섬 꼭대기까지는 짐을 나르는 간이 케이블카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걸어 올라가야 한다. 목까지 차오르는 숨을 누르며 겨우 경비실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에 ‘특정도서 제1호 독도’라는 표지판과 울릉군수의 안내문이 보인다.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그곳 방식으로 간단히 식사를 하고 같이 온 일행들은 음식물쓰레기를 자동으로 분해하는 기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2시간 안에 마무리하고 출발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전선을 제대로 뽑아놓지 못했다나. 하릴없이 시간만 간다.

털이 유난히 많은 커다란 개 2마리가 좁은 마당에서 뛰어놀고 있다. 이름을 물으니 ‘곰’과 ‘몽실이’라고 하는데 지난 1998년 삽살개보존회로부터 기증받아 독도경비대가 사육하고 있는 견공들이었다. 사람을 무척 좋아하고 주위에서 던져주는 오징어도 잘 받아먹는다. 꼬리를 흔들며 귀염을 떠는 품이 여간 예사롭지 않다. 처음엔 4마리가 같이 왔다는데 2마리만 남았다고 한다. 괜히 식당 쪽을 흘겨봤지만 다행이 별다른 낌새는 없었다.

로밍 없이 휴대폰 터지는 곳.. ‘韓國領’을 지키는 여드름 청년들

주변도 돌아볼 겸 산보에 나섰다. 울릉우체국이라고 쓰인 우체통과 한자로 ‘韓國領(한국령)’이 새겨진 바위를 돌아 독도경비대본부 건물로 올라갔다. 경비대원숙소의 기와지붕에도 ‘大韓民國(대한민국)’이 한자로 새겨져있다. 일본사람들 보라고 굳이 한자로 썼나보다.

콘크리트로 만든 태극기가 있고 그 옆으로 섬 끝부분에는 경찰 한 명이 늠름하게 일본 쪽 바다를 지키고 있다. 어린 나이에 외딴 곳에서 고생이 많겠다 싶어 안쓰럽긴 했지만 미동도 없이 동쪽을 응시하는 모습에서 든든함과 정겨움이 밀려들기도 했다. 독도경비대 건물 옆에 채 한 평도 안 될 것 같은 조그마한 텃밭이 눈에 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헬기장에 올라갔다. 밑을 보니 생각보다 아찔하다. 바다 위에서 문제없이 터지던 휴대폰이 독도에서도 터질까 궁금해 집에 전화를 했다. 터진다. 위치와 방향에 따라 수신감도가 오락가락하긴 했지만 국제로밍 없이도 휴대폰이 터지는 독도는 역시 우리 땅이었다. 부모님께 안부를 전한 뒤 다시 미국에 있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독도에서 전화하는 거야.” 자랑스러운 내 말투와는 달리 동생은 심드렁하다. “그래? 독도는 또 웬일이야. 태환이 바꿔줄까?” 평소 조카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전화를 하곤 했지만 한국에서 느끼는 ‘독도’의 상징성을 미국에서는 그다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독도까지 왔으니 독도수비대장하고 인터뷰라도 해야 본전을 건지겠다 싶어 부지런히 눈을 돌렸지만 멋진 제복을 입은 간부급을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얼굴도 안 비치나 싶었는데 참 뒤에 아직 여드름도 채가시지 않은, 그래서 그냥 일반 의무경찰 정도로 보이는 한 젊은 청년이 이곳 대장이라고 했다. 같은 체육복을 입고 다녀서 설마 했었는데 대장이란다.

“몇 년생이에요”라고 물으니 “비밀이에요”라며 수줍은 미소를 보인다. 주변 경찰들한테 물으니 어린 것 같은데 자기들한테도 나이를 밝히지 않는다고 한다. 인터뷰를 좀 하자고 했지만 마음대로 인터뷰를 할 수 없다며 미안한 표정을 보인다.

뭔가 좀 더 말을 붙여보고 싶었지만 곤란해 하는 이 앳된 청년의 얼굴을 보니 외교분쟁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국군대신 해경을 파견해야 하는 약소국의 설움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일본과의 첨예한 갈등이 집중되는 이 예민한 곳을 지키는 이들은 대개 30살 미만의 젊은 청년들이었다. 얼마나 무료하고 외로울까 하는 마음에 정겨움과 기특함이 겹친다.

국토 최동단 지키는 큰 섬 독도

어떻게 말을 좀 더 붙여보고 싶었지만 밑에서는 출발해야 한다고 난리다. 독도에 들어온 지 2시간 정도 밖에 안 됐고 사진도 제대로 못 찍었으며 인터뷰도 못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안 나가면 집에 못 간다. 급하게 사진을 몇 장 더 찍고 뛰어내려와 배에 올랐다.

오전 9시 45분. 독도를 떠나며 몇 컷의 사진을 더 찍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독도에서 있었던 일들을 복기해 수첩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독도를 떠난 지 약 2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멀리 독도가 보인다. 우리의 안전제일호가 유독 느린 탓도 있지만 독도 또한 그렇게 작은 섬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최동단을 지키는 당당하고 큰 섬이었다.

저녁 7시30분, 울릉도에 도착했다. 울릉도에서 독도행 배에 오른 지 27시간 만이다. 선상에서 보낸 시간만도 24시간이 넘는 시간이었고 울릉도와 독도가 약 92km 떨어진 점을 고려한다면 독도에서 울릉도를 시속 10km 미만으로 온 셈이다. RV차량으로 된 울릉도택시를 타고 울릉도에서 유일하다는 찜질방으로 갔다. 손님이 거의 없다.

유난히 새 건물이 번뜩이는 울릉도 국립의료원에도 가봤다.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3개 층 이하는 계단을 이용하자’는 국회의 구호가 떠올라 걸어서 올라갔다가 다시 걸어서 내려왔다.

호박엿을 사고 여객선에 올랐더니 TV에서 또 퀴즈쇼를 하는데 반가운 문제가 나온다. “동해에 있는 섬으로 인구는 1만명 가량이며~.” 답은 물론 울릉도. 사회자가 추가 설명을 한다. “최근 울릉도에 최초의 엘리베이터가 생겨 명물이 되고 있답니다.” 불길한 예감. 아까 그냥 두고 굳이 걸어서 내려온 국립의료원의 엘리베이터였다.

성종실록에 등장하는 삼봉도는 정확히 ‘독도’

독도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에 딸린 섬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독도리 산 1~37번지.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 도동 1번지, 동경 132, 북위 37, 평균기온 12도 강수량은 1300.” ‘독도는 우리 땅’의 2절이다. 주소는 좀 바뀌었지만 가사로 전달할 수 있는 음악의 힘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난 지금도 이 노래를 4절까지 외우고 있다.

우리의 옛 기록에 등장하는 삼봉도(三峯島)를 일본은 울릉도라고 우기고 있지만 성종실록(成宗實錄)에는 나오는 삼봉도에 대한 설명은 정확히 독도를 나타내고 있다.

“섬 북쪽에 세 바위가 벌여 섰고, 그 다음은 작은 섬, 다음은 암석이 벌여 섰으며, 다음은 복판 섬이고, 복판 섬 서쪽에 또 작은 섬이 있는데, 다 바닷물이 통한다.”

일본의 기록도 마찬가지. ‘전보신문(電報新聞)’은 1906년 5월 27일 기사에서 러일해전의 전장(戰場)으로 독도의 지형을 설명하며 동도와 서도, 관음도(觀音島) 등 세 개의 섬을 열거하는데 신문에 실린 독도의 전경 사진에도 세 개의 섬 ‘삼봉도’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제3국의 자료도 있다. 1849년 3월 독도를 목격한 미국 포경선 ‘윌리암 톰슨’호는 항해일지에 ‘세 개의 바위를 보았다’고 기록했다. 역시 ‘삼봉도’였다.

삼봉도, 가지도, 우산도 거쳐 1881년 독도로.. 1905년 시마네현 편입보다 개칭도 빨라

독도의 면적은 면적 0.186㎢이며 독섬이라고도 한다. 울릉도에서 남동쪽으로 90㎞ 해상에 위치하며, 동도(東島)·서도(西島) 및 그 주변에 산재하는 36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진 화산섬이다. 동도·서도 사이는 너비 110∼160m, 길이 330m의 좁은 수도(水道)를 이룬다. 동도는 해발고도 98m에 화산암질 안산암으로 이루어졌고 분화구가 있으며, 서도는 해발고도 168m에 안산암·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응회암(凝灰岩)으로 돼있다. 동도를 암섬, 서도를 수섬이라 하기도 한다.

옛날에는 삼봉도(三峰島), 가지도(可支島), 우산도(于山島) 등으로도 일컬어졌으며, 1881년 독도로 개칭됐다. 울릉도가 개척될 때 입주한 주민들이 처음에는 돌섬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돍섬으로 변했다가 다시 독섬으로 변했고, 독섬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독도가 됐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이 섬을 발견한 배의 이름을 따서 불렀는데, 프랑스에서는 ‘리 앙쿠르(Li ancourt)’ 영국에서는 ‘호넷(Hornet)’으로 해도에 표기하고 있다. 1905년 러일전쟁을 통해 독도의 가치를 재인식한 일본은 같은 해 2월 22일 일방적으로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개칭하고 일본 시마네현(島根縣)에 편입시켰으며, 이후 계속해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해 현재까지 한국과 일본 간의 외교현안으로 남아 있다.

섬은 동도와 서도 사이의 형제굴, 동도의 천장굴 등을 비롯한 해식동굴과 해식대 및 해식애가 발달했다. 강한 해풍과 부족한 토양 탓에 바위틈에 약간의 식물들이 자랄 뿐 한 그루의 나무도 없었으나 소나무와 동백나무를 옮겨 심어 지금은 꽃을 볼 수 있다.

경비대가 상주하게 된 이후 바위 위에 터를 닦아 집을 짓고 간이선착장을 만들었으며, 여러 곳에서 수질이 좋은 용천(湧泉)이 발견되어 식수 문제도 해결됐다. 섬 주변은 한류와 난류가 교차함에 따라 많은 어족이 모여들어 어장으로서의 가치가 높으며, 1954년 8월에 건설한 등대가 있다.

바다제비, 슴새, 괭이갈매기 등 이곳에 모여드는 희귀조를 보호하기 위해 1982년 11월 천연기념물 제336호 독도 해조류(바다제비·슴새·괭이갈매기) 번식지로 지정했다.(네이버 백과사전)

ⓒ 데일리서프라이즈 2005-03-18 09:40


 (2005/03/18 10:18:15)

게시판 폭을 720픽셀 정도로 줄이면 글 읽기가 좀 더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2005/03/18 10:30:45)

전체 홈을 950으로 만드어 놨기에....그렇습니다.
갤러리 때문에요..
 
 (2005/03/18 10:36:16)

게시판별로 별도로 가로크기를 지정할 수 있습니다.
 
 (2005/03/18 10:43:03)

위에 베너를 950으로 만들었거든요
고통으로 사용 하는 거라서....베너크기하고 게시판 크기가 다르면 보기가 싫겠기에...^>^??
 
 (2005/03/18 10:47:17)

그렇군요.
사실 미학적으로는 그런데...
게시판 같은 경우엔 주로 텍스트잖아요.
읽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요꼬(이것도 일본말이네 제길)치듯이 멀리 왔다갔다 하면 고개도 아프고
그 다음줄을 위치를 놓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제 홈페지에 '풍아컬럼'은 가로 크기를 640으로 고정시켰답니다.
신문이나 책을 보면 한줄이 20글자에서 아무리 커도 최대 40글자를 넘기지는 않거든요.
독자에 대한 배려라고나 할까요.
(계속 징징거리는 풍아^^)
 
 (2005/03/18 11:13:49)

720...근디 제목이 난리 인디요..??
 
 (2005/03/18 11:19:58)

아 좋습니다. 감사!
너무 긴 제목들을 컷트 치듯이 정리좀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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